기자명 박헌석 기자
  • 입력 2026.11.02 10:44
  • 수정 2026.11.02 10:50

자산 하위 20% 생활비 신용대출 비중 45.3% 기록
고소득층과 달리 투자 아닌 일상 소모성 부채에 집중
단순 대출 확대 대신 복지 중심의 채무조정 정책 과제

AI 생성이미지.

자산과 소득 최하위 계층이 고금리 신용대출을 받아 하루하루 생활비를 메우는 구조적 한계선에 다다랐다. 담보가 없고 소득 여력이 바닥난 차주들이 신용대출 시장으로 내몰리면서 미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소모성 빚이 금융기관의 잠재 부실 뇌관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2일 국가통계포털의 가계금융복지조사 신용대출 용도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신용대출 목적 가운데 생활비 마련이 차지하는 비중은 45.3%에 달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7년 이래 최고치다.

2017년 33.4%였던 자산 1분위의 생활비 비중은 2021년 41.9%로 40% 선을 처음 돌파한 뒤 매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득 하위 20%인 소득 1분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소득 1분위의 생계용 신용대출 비중은 직전 해인 2024년 34.5%에서 지난해 38.2%로 가파르게 뛰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상위 계층과의 격차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 금융 건전성의 질적 왜곡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자산 4분위와 5분위는 신용대출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사업자금 마련이나 주택 이외 부동산 매입을 꼽았다. 고소득∙고자산층의 신용대출은 투자나 자산 증식, 사업 확장을 통한 상환 능력 확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열려 있다.

반면 자산 1분위에서는 사업자금 마련 비중이 19.9%로 쪼그라든 반면 생활비 비중은 절반에 육박했다. 자산 형성은커녕 당장의 먹거리와 공과금, 병원비 등 일상 소모성 지출을 메우기 위해 무담보 고금리 대출을 끌어다 쓰는 처지에 놓였다.

신용대출은 담보대출과 달리 담보물이 없어 금융기관이 차주의 신용위험을 그대로 떠안는다. 이에 따라 적용 금리가 높게 책정되며 시장 금리가 오르거나 신용위험 프리미엄이 붙을 때 이자 부담이 가장 먼저 폭증한다.

특히 자산과 소득이 취약한 1분위 차주는 상환 능력 자체가 미약해 연체율과 부도율이 통계적으로 높다. 이들이 부담하는 대출 금리는 시장 평균치를 크게 웃돌 수밖에 없으며, 높은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다른 고금리 대출에 손을 대는 다중채무 악순환에 직면한다.

과거 추이를 짚어보면 이런 위험 신호는 지속해서 누적돼 왔다. 자산 1분위의 부채 상환 용도 비중은 2024년 10.1%에서 지난해 16.2%로 단숨에 6.1%포인트 뛰었다. 신용대출로 기존 빚을 돌려막으면서 동시에 생활비를 조달하는 가계가 10곳 중 6곳 이상이라는 의미다. 이는 소득 증가를 통해 원리금을 점진적으로 상환해 나가는 정상적인 가계 신용 흐름이 완전히 단절됐음을 방증한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은 정책 서민금융 공급 확대와 채무조정 지원책을 내놓고 있으나 근본적인 부실 억제책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저소득∙저자산 차주에게 더 많은 대출 한도를 열어주거나 보증을 제공하는 방식은 차주를 빚더미 위에 방치하는 미봉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출 지원은 만기 연장과 대환대출을 거치며 부실의 절대 규모만 키울 위험이 크다. 제도권 금융에서 한계에 달한 취약차주들이 다중채무의 덫에 걸려 제2금융권과 대부업, 나아가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연쇄 탈락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금융회사 역시 취약계층 비중이 높은 신용대출 자산의 충당금 적립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단순한 대출 공급 유지나 보증 확대에 기댈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의 생계형 적자를 금융 부채가 아닌 재정 복지 영역으로 조기에 분리하고, 한계 차주에 대한 선제적 채무조정을 실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반기 서민금융 정책의 초점이 단순 자금 융통에서 실질적인 부채 감면과 재정 지원으로 옮겨갈지가 향후 금융권 연체율 관리를 가늠할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상환 능력을 잃은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유입되는 경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차단할지도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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