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형진 기자
  • 입력 2026.10.31 10:42
  • 수정 2026.10.31 10:50

2028년 정부부채 비율 124% 도달 전망
동급 국가 대비 2배 높은 이자 비용 부담
내년 대선 앞둔 정치권 예산안 처리 결과

AI 생성이미지.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30일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면서도 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전격 강등했다. 신용도에 중대한 질적 악화가 발생했을 때만 발동하는 비정기 검토를 거친 결과다. 피치는 늦어도 내년 2월 말까지 등급을 재조정하겠다고 예고하며, 프랑스 재정이 현 등급마저 지탱하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도달했음을 시사했다.

가장 큰 원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와 재정적자다. 피치는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025년 115.7%에서 2028년 124%까지 치솟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 8월 제시했던 전망치 122.7%보다 1.3%포인트 상향된 수치다. A등급 국가들의 부채비율 중간값과 비교하면 2배에 달한다. 부채 안정화에 필요한 누적 재정 조정 규모 역시 GDP의 3.0%에서 3.5%로 높아졌다. 줄여야 할 지출의 문턱은 계속 높아지는데, 이를 감당할 기초체력은 고갈된 상태다.

실물 경제의 부진은 재정 악화를 부추기는 핵심 고리다. 프랑스 통계청(INSEE)이 30일 발표한 3분기 GDP는 전 분기 대비 0.1% 감소하며 역성장했다. 1분기 0.2% 역성장과 2분기 제자리걸음에 이어 부진이 장기화하는 흐름이다. 기업 설비투자가 위축되며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가운데, 분모인 GDP가 쪼그라들자 재정적자와 부채비율 지표는 자동으로 나빠지고 있다.

역성장 속에 차입 비용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프랑스 국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장중 5.14%까지 올랐고, 독일 국채와의 금리 격차는 174bp(1bp=0.01%포인트) 수준까지 벌어졌다. 피치는 프랑스의 GDP 대비 이자 비용 부담이 2025년 2.5%에서 2028년 3.3%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동일 신용등급 국가 중간값인 1.5%를 2배 이상 웃돈다. 긴축으로 확보한 재원조차 채권 이자를 갚는 데 빨려 들어가는 채무의 덫이 가시화됐다.

문제는 재정 건전화를 위해 정부가 손댈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사실상 봉쇄됐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이미 유럽 내 최고 수준의 조세 부담률을 기록 중이어서 추가 증세로 세수를 확충할 여력이 좁다. 공공 서비스와 복지 지출 축소 역시 거센 시위 등 극심한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내놓은 긴축 구상은 대중적 반발에 밀려 번번이 후퇴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정치적 표류를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는다. 정부는 연말 예산안 처리의 시급성을 강조하지만, 내년 4월과 5월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의회는 극우와 극좌 진영을 중심으로 분열됐다. 유권자를 의식해 선심성 재정 지출 확대를 내세우는 포퓰리즘 경쟁이 심화하는 형국이다. 피치 역시 대선을 앞둔 정쟁 속에서 프랑스가 지속 가능한 재정 건전화에 합의할 것이라는 신뢰가 낮다고 평가했다.

다른 신용평가사들의 진단도 궤를 같이한다. 무디스(Moody's)는 최근 프랑스의 ‘Aa3’ 등급을 유지하면서도 부정적 전망을 거두지 않았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이미 프랑스 신용등급을 ‘A+’로 낮췄다. 유로존 2위 경제 대국이라는 위상과 견고한 제도적 방패가 경제 펀더멘털 악화 앞에서 무력화하고 있다.

시장의 이목은 의회의 예산안 논의 과정과 후속 개혁 조치에 쏠려 있다. 당장 연말까지 대중적 반발을 극복하고 실효성 있는 긴축 예산을 관철하지 못할 경우, 내년 2월로 예정된 피치의 평가에서 국가신용등급의 연쇄 강등이 현실화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한국신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