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6.10.28 09:43
나이스신용평가 하향 검토 기준 동시 도달
글로벌 평가사 선제 강등 속 국내 유예 비판
연말 정기평가 앞두고 자금 조달 비용 상승 우려

국내 우량 회사채 시장의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AA급 대기업마저 수익성 침체와 차입금 확대라는 이중고를 견디지 못하고 신용평가사의 등급 하향 검토 기준선 안쪽으로 밀려났다. 대규모 설비투자와 원가 상승의 부담을 우수한 현금 창출력으로 흡수해 왔던 핵심 우량 기업들마저 신용도 방어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신호가 자본시장에 뚜렷해지고 있다.
27일 나이스신용평가가 발표한 회사채 신용등급 및 재무지표 분석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대표 김동명)과 CJ제일제당(대표 강신호)은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을 측정하는 주요 지표 각각 두 개가 신용등급 하향 검토 기준에 동시에 도달했다.
이번 지표 악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신용평가사가 제시한 기준선이 일시적 미달을 넘어 큰 폭으로 훼손됐다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올해 6월 말 연결 기준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이 마이너스 0.7%까지 추락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하향 검토 기준으로 제시한 4% 미만을 밑돈 것은 물론이고, 영업활동을 통해 정상적인 수익을 남기지 못하는 상태에 접어들었다. 2023년 말 6.4%였던 해당 지표는 2024년 말 2.2%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말 5.7%로 잠시 반등했으나, 올해 상반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와 공장 가동률 저하가 겹치며 손실권으로 주저앉았다.
수익성이 바닥을 치는 사이 빚은 가파르게 불어났다. LG에너지솔루션의 연결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129.0%로 이미 기준선인 120%를 초과한 데 이어 올해 6월 말 157.1%까지 치솟았다. 북미와 유럽 거점 증설을 위해 외부 차입을 지속해서 끌어다 쓴 반면, 이를 회수해야 할 전방 수요는 살아나지 못하면서 재무안정성 지표가 가파르게 무너진 결과다. 벌어들이는 돈은 적자로 돌아섰는데 갚아야 할 부채 규모만 급격히 커지며 자력으로 차입금을 감내하기 어려운 구조적 불균형에 직면했다.
전통적인 소비재 강자로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자랑하던 CJ제일제당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CJ제일제당은 CJ대한통운을 제외한 연결 기준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매출액 비율이 올해 6월 말 9.1%로 집계됐다. 하향 검토 기준선인 10%를 밑도는 수치다. 고환율 장기화로 인한 수입 곡물 가격 부담과 내수 소비 둔화로 인해 판매 가격 인상이 막힌 데다,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판촉 및 마케팅비 출혈이 계속되면서 기초 체력이 급격히 소진됐다. 차입금 커버리지 지표 역시 위험 수위에 다다르면서 현금 창출력 둔화가 재무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양상이다.
신용평가업계는 수치상 기준에 걸렸다고 해서 즉시 신용등급을 강등하지는 않는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다. 개별 재무비율 외에도 글로벌 사업 경쟁력, 유동성 완충력, 모그룹의 유사시 지원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과 CJ제일제당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은 올해 9월 말 기준 모두 AA 등급과 안정적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유예적 평가가 오히려 시장의 체감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이미 국내 기관보다 한발 앞서 칼을 빼 들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대규모 투자 지출과 차입 부담 장기화를 이유로 LG에너지솔루션의 신용등급을 BBB로 강등했고, 무디스 역시 연쇄적으로 등급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해외 평가사들이 전기차 시장 침체와 보조금 불확실성을 들어 등급 조정을 끝낸 상황에서,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우량 기업이라는 상징성과 일시적 실적 회복 가능성에 기대어 판단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제는 하반기 이후에도 이들 기업의 뚜렷한 반등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불확실성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속도 조절이라는 외생 변수에 노출돼 있다. 조 단위 설비투자의 집행 시기를 늦추거나 축소하더라도 이미 누적된 차입금 규모가 워낙 커 이자 비용 압박은 갈수록 가중될 수밖에 없다. CJ제일제당 역시 원가 전가력이 약화한 상태에서 비핵심 자산 매각 등 일회성 자구책만으로는 지속적인 현금 흐름 창출을 입증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AA급이라는 우량 등급이 주는 시장의 신뢰는 재무건전성이 기준선 안에서 통제된다는 전제하에 성립한다. 하지만 두 기업 모두 수익성과 차입금이라는 신용평가의 핵심 양대 축이 하향 방어선을 동시에 이탈한 상태다. 연말 정기평가 시즌을 앞두고 신용평가사들이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하거나 실제 등급 강등을 단행할 경우, 우량 회사채 시장 전반으로 자금 조달 비용 상승과 투자 수요 위축이라는 충격파가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