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형진 기자
  • 입력 2026.10.24 13:14

무디스 신용등급 동결 속 유로존 기준 2배 부채
스탠더드앤드푸어스 등 강등 속 조달 비용 급등
다음 달 정기 평가와 70일 내 예산안 통과 여부

AI 생성이미지.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23일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a3’로 유지했다. 등급 전망은 ‘부정적’으로 둬 강등 가능성을 남겼다.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프랑스 재정의 건전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정치적 전제를 담보로 내준 시한부 유예로 보고 있다.

무디스가 등급 유지의 근거로 내세운 단서 조항은 두 가지다.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2027회계연도 긴축 예산안이 의회에서 온전히 처리되는 것과, 대규모 사회 갈등이 향후 수개월 내 진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 정계의 극단적 대치와 거리의 혼란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런 신용평가사의 유예와 달리 시장의 평가는 가혹하다. 글로벌 채권 시장은 무디스의 등급 발표 이전부터 이미 프랑스를 명목 등급보다 낮은 부실 채권국으로 대우하고 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5% 선을 돌파하며 2002년 7월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 수준으로 치솟았다.

다른 국가와의 비교 지표도 경고음을 울린다. 유로존 재정건전성의 기준점인 독일 10년물 국채와의 금리 차이(스프레드)는 15년 만에 가장 넓게 벌어졌다. 심지어 프랑스보다 신용등급이 두 단계 이상 낮은 이탈리아 국채보다 프랑스 국채 조달 비용이 더 높게 형성되는 기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프랑스 국채 잔액의 10% 이상을 쥐고 주요 매수 주체로 활동하던 일본계 대형 기관투자가들도 장기채 보유 비중을 줄이며 이탈을 가속하고 있다.

경쟁 신용평가사들의 평가는 이미 시장 금리에 부합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와 피치는 일찌감치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무디스보다 한 단계 낮은 ‘A+’로 강등했다.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무디스 홀로 ‘AA’ 등급대를 부여하며 버티고 있지만, 시장 금리는 이미 ‘A’ 등급 이하의 위험 프리미엄을 반영해 움직이고 있다.

프랑스 공공재정의 기초체력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무디스 전망에 따르면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202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20%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유로존 재정준칙 상한선인 60%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성장 둔화와 구조적인 재정적자 확대가 맞물리며 부채 증가 속도는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GDP의 5% 수준으로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지출 삭감의 구체적 경로는 보이지 않는다.

당장 예산안을 입법화해야 할 의회 지형은 사상 최악의 교착 상태다. 프랑스 정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이끄는 내각 중도파는 의회 과반에 턱없이 모자란다. 의회는 극우 진영인 국민연합과 좌파 연합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 등 양극단 세력으로 쪼개져 있다. 이들 정파 모두 복지 축소와 공공지출 삭감에 정면으로 반대해 예산안 원안 통과는 사실상 어렵다.

프랑스 정부가 헌법상 특별 조항을 활용해 의회 표결을 건너뛰고 예산안을 강행 처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즉각적인 내각 불신임과 정권 붕괴라는 치명적 역풍을 부를 위험이 크다. 지난 2년 사이 총리가 5번이나 바뀔 만큼 국정 마비가 극심했던 데다, 2027년 차기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공약 경쟁까지 겹쳐 정치권의 긴축 의지는 꺾였다. 지난 17일 물가 안정과 생활고 해결을 요구하는 전국 단위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며 수천 명이 체포되는 등 긴축에 반대하는 국민적 저항도 임계점을 넘었다.

결국 무디스의 결정은 해결 불가능한 과제를 주며 기회를 준 최후통첩에 가깝다. 향후 70일간의 법정 예산안 처리 시한 동안 의회가 파행을 빚거나 내각 불신임 사태가 재연될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오는 11월 27일로 예정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정기 신용평가 결과도 핵심 지표다. 프랑스가 재정지출 삭감을 실질적으로 입증해 내지 못하면 남은 ‘Aa3’ 등급마저 하향 조정돼 국채 조달 비용이 폭등하는 진정한 신용 경색에 직면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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