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형진 기자
  • 입력 2026.10.24 09:13

한국수출입은행 가산금리 급등에 엔화채 연기
글로벌 신용 스프레드 17개월 만에 최고치
AI 수익 입증 전까지 외화 차환 부담 지속

AI 생성이미지.

인공지능(AI) 설비투자의 실제 현금 창출력에 대한 의구심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겹치며 글로벌 크레딧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을 갖춘 국책은행조차 불리한 조달 비용을 피하기 위해 외화 조달 창구를 닫았다. 저비용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던 발행사 우위의 장세가 끝나고, 투자자가 위험 프리미엄을 깐깐하게 따지는 국면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무디스 기준 ‘Aa2’ 신용등급을 보유한 대표적 우량 발행사인 한국수출입은행은 최근 추진하던 공모 글로벌 엔화채 발행 일정을 전격 보류했다. 당초 이번 주 투자자 수요를 사전 타진하는 소프트 사운딩을 거쳐 채권을 찍을 예정이었으나,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가산금리가 불과 열흘여 만에 10bp 이상 치솟았기 때문이다. 국가 신용도와 사실상 동일한 우량 기관조차 무리한 비용을 감수하며 채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결과다.

같은 시기 달러화 공모 채권 수요예측을 준비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 역시 높아진 금리 레벨에 부담을 느끼고 시장 진입을 미뤘다. 한국산업은행의 신용보강을 받아 최근 공모 달러채 수요예측을 마친 대한항공의 경우 신규발행 프리미엄(NIP)이 10~15bp 수준까지 오르며 투자 심리 위축을 체감했다. 최상위 공기업마저 외화채 발행을 늦추는 상황이 전개돼 롯데렌탈 등 하위 등급 기업의 자금 조달은 사실상 멈춰 섰다.

이번 조달 시장 한파의 진원지는 주식시장을 맴돌던 AI 거품 논란이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첨단 반도체 확보를 위해 막대한 외부 차입을 일으킨 기술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본지출을 실제 현금흐름으로 회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확산했다. 이런 우려가 채권과 신용파생상품 시장의 본질적인 신용위험 평가로 전이돼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극도로 강해졌다.

실제로 블룸버그 지수 기준 글로벌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는 23일 최대 129bp까지 벌어지며 2025년 5월 이후 1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시아 우량 기업의 달러화 채권 스프레드가 동반 상승했고, 채무불이행 위험을 반영하는 아시아 신용부도스와프(CDS) 스프레드 역시 장중 2bp까지 확대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핵심 기술 기업인 메타의 5년 만기 CDS 프리미엄은 114.79bp로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으며 광범위한 위험 재평가가 일어나는 실정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일시적 변동성 확대로 보지 않는다. 17개월 전 신용 스프레드가 급등했을 때는 미∙중 무역협상 같은 정책 불확실성 완화로 시장이 빠르게 반등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기술 기업들의 실질적인 부채 상환 능력과 설비투자 수익성이라는 펀더멘털 검증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시장이 안정을 되찾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량 등급 발행사라 하더라도 과거처럼 원하는 금리에 물량을 소화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위험 프리미엄 재산정 국면이 장기화하면 만기가 도래하는 기존 외화채의 차환 비용 부담은 기업에 직접적인 재무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결국 한국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주요 기관이 적정 금리로 조달을 재개할 수 있을지는 향후 세 가지 지표에 달렸다. 당면한 관전 포인트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설비투자에서 신용시장을 안심시킬 만한 현금 수익을 증명하는지 ▲신용 스프레드 확대가 기술 기업을 넘어 타 산업 및 투기등급 회사채로 확산하는지 ▲국내 공기업들이 연내 외화 조달 일정을 다시 잡을 수 있는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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