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헌석 기자
  • 입력 2026.04.08 18:54

2분기 요금 동결·유가 급등·부채 이자…3중 압박 시작
연료비 -11.2원 산정에도 동결, 중동 사태로 하반기 직격탄 예고

한국전력
한국전력

역대 최대 흑자를 낸 한국전력이 불과 한 분기 만에 '수익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전력(사장 김동철)은 지난해 매출 97조4345억원, 영업이익 13조5248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고 2월 26일 밝혔다. 2023년 4분기 이후 10개 분기 연속 흑자 행진이다. 연료가격 안정과 2022년 이후 7차례에 걸친 전기요금 인상이 맞물린 결과다.

그러나 이 호실적의 이면에는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별도 기준 누적 적자는 36조원, 부채는 118조원(부채비율 444%)에 달한다. 차입금 잔액 84조9000억원에서 매일 발생하는 이자만 72억원 수준이다. 흑자 전환에도 불구하고 재무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분기(4~6월) 전기요금 구조가 새로운 부담 요인으로 떠올랐다. 한전은 3월 23일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현행 kWh당 5원으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인상 없는 안정적 요금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전이 내부 산정한 필요 조정단가는 kWh당 -11.2원이었다. 중동 사태 이전인 2025년 12월~2026년 2월 연료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오히려 요금을 낮춰도 됐지만, 정부는 재무 상황을 고려해 현행 수준을 유지했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이후 터진 에너지 충격이다. 이란의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시설 공격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세로 돌아섰다. 카타르는 세계 LNG 공급의 약 20%를 담당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유가 급등 영향에 더해 카타르 물량을 대체하기 위한 경쟁으로 가격 상승 위험이 커졌다"며 "전력 수요가 높아지는 여름철은 물론 차질이 이어지면 겨울철 전기요금 상승 압력도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구조가 한전에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는 중동 사태 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정됐다. 실제 연료 비용은 이미 뛰고 있지만,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있는 조정단가 상한은 kWh당 ±5원으로 제한돼 있어 비용 증가분을 요금에 전가할 수 없는 구조다. 과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전력도매가격(SMP)이 kWh당 196.7원까지 치솟았지만 평균 판매단가는 120.5원에 묶였던 '역마진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시각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4월 2일 한전에 대해 2026년 영업이익을 6조8231억원으로 전망했다. 전년 대비 49.4% 급감한 수치다. 2027년에는 3조3757억원으로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유 가격이 비용에 반영되는 시차가 5~6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2026년 3분기부터 영업이익 감소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환경도 요금 현실화를 가로막는 변수다.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물가 자극 요인이 될 전기요금 인상에 나서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산업계는 최근 4년간 80%에 달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누적 부담을 들어 요금 인하를 요구하고 있어, 한전은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한 형국이다.

한전은 전면적인 요금 조정 대신 시간대별·지역별 차등 요금제 설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태양광 발전이 집중되는 오전 11시~오후 3시 구간 요금을 낮추고, 오후 6~9시 구간은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24시간 연속 가동 업종은 이 같은 시간대별 요금 조정의 수혜를 거의 받을 수 없어 업계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기록적 흑자의 그늘 아래 한전이 맞닥뜨린 구조적 딜레마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전력 산업의 특성상, 국제 연료시장의 불안이 지속되는 한 '역마진 재연' 우려는 상존한다. 36조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와 하루 72억원씩 쌓이는 이자 비용은, 한전의 '최대 흑자'가 얼마나 유리한 곳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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