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6.10.06 11:30
2030년 태양광 87GW 목표로 계약시장 전면 도입
이격거리 규제 풀렸지만 민간 시장은 저가 중국산 우위
더딘 송전망 확충과 내년 제정될 계약 규칙이 실적 좌우

정부가 2030년까지 태양광 설비 87GW 보급을 목표로 지원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지난 5월 수립된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과 지난달 18일 시행령이 발효된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개정안에 따라, 15년간 유지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가 내년 1월부터 정부 주도의 장기고정가격 계약시장으로 바뀐다. 태양광 입지를 제한하던 이격거리 규제도 대폭 풀렸다. 하지만 중국산 저가 모듈의 공세와 장기화하는 송전망 부족 문제가 겹치며, 판이 커진 태양광 시장의 혜택이 국내 산업 생태계로 온전히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과 2035년 발전 비중 30% 달성을 핵심으로 삼았다. 이 가운데 인허가와 시공 기간이 짧은 태양광에 전체 목표의 87%인 87GW가 집중 배정됐다. 이는 과거 2년 평균 신규 설비 확충 속도보다 3.5배 빠른 규모다.
가장 큰 변화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던 이격거리 규제의 철폐다. 그동안 기초지자체 228곳 중 129곳이 제각각 운영하던 이격거리 규제가 지난달 법률 시행령을 통해 원칙적으로 금지됐고, 주거지역 기준 최대 200m까지만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이로써 묶여 있던 잠재 입지가 열리며 태양광 보급 총량이 크게 늘어날 기반이 마련됐다.
보급 체계의 구조적 변화도 뒤따른다. 기존 RPS는 발전량에 비례해 의무공급량이 정해져 정책 관리에 한계가 있었고, 2024년 이행 비용 정산금이 약 4조 원까지 불어났다. 이를 대체할 계약시장은 정부가 설비 용량 기준으로 입찰 물량을 정해 장기고정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단, 계약단가 하락은 발전사업자에게 수익성 압박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태양광 계약단가를 올해 킬로와트시(kWh)당 150원에서 2030년 100원, 2035년 80원까지 낮출 계획이다. 마진 축소 우려에 대해 정부는 국유재산 임대료 경감 한도를 80%로 높이고 산단과 공장 지붕 태양광에 2,94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발전효율과 자본조달 구조에 따라 사업자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커진 시장이 국내 태양광 밸류체인의 실적 개선으로 직결될지도 단언하기 어렵다. 저가 수입산의 득세로 국내 모듈 국산 점유율은 2018년 72.5%에서 2024년 41.6%로 급감한 상태다. 수입 모듈의 98%가 중국산이다.
미드스트림(셀∙모듈)을 담당하는 한화솔루션과 HD현대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제조사는 정부의 국산 우대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공공사업 내 국산 모듈∙인버터 사용 의무화와 탄소인증등급제도에 따라 이른바 ‘등급시장’에서는 국내 기업이 유리하다. 하지만 등급시장은 전체 태양광 시장의 30%에 불과하다. 가격 경쟁력이 최우선인 70%의 ‘무등급시장’에서는 저가 중국산과의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탠덤셀 등 차세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발전 효율과 품질을 높여 가격 외 경쟁력을 증명해야 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반면 다운스트림에 속하는 개발, 설계∙조달∙시공(EPC), 운영∙유지보수(O&M)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확실한 수혜가 예상된다. 국내 인력과 설비 의존도가 높아 해외 업체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SK이터닉스와 시공 및 가상발전소(VPP) 사업을 영위하는 해줌, 에너닷 등 입찰 실적을 보유한 사업자들이 시장 확대의 과실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태양광 87GW 시대의 성패는 생산한 전기를 실어 나를 송전망의 확보와 구체적인 제도 운영 방식에 달렸다. 송전선로 확충 속도가 발전 설비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계통 병목 현상은 밸류체인 전반을 위협하는 최대 위험 요소다. 정부가 호남과 수도권을 잇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1단계 준공 시점이 2031년으로 예정돼 있어, 중기적으로 송전 제약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량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통합 관리하는 가상발전소 확산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 시범 운영 중인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 가상발전소 중개 사업자는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다. 다만 제도의 전국 확대 시기와 방식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관련 업계의 불확실성이 남았다.
무엇보다 발전사업자와 시공사들의 실제 투자 의사결정은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계약시장제도의 세부 기준이 확정된 이후에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계약시장 규칙이 어떻게 다듬어질지, 그리고 장기화하는 계통 병목을 완화할 추가 대책이 뒤따를지가 이번 재생에너지 정책 변화의 실효성을 가름할 핵심 기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