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6.10.28 11:37
주요 4개 은행 9월 말 고정이하여신 8조 8,080억 원 기록
기업 대출 쏠림과 단기 실적 방어 기조로 대손충당금 적립률 급락
12조 원 넘는 잠재 부실 대출의 추가 하향 조정 및 수익성 타격

은행권의 부실채권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지만 손실을 흡수할 방어벽은 오히려 얇아지고 있다. 부실 징후를 감지하고 대손충당금을 선제적으로 늘려야 할 시점에 적립 속도를 늦추면서 건전성 지표가 심리적 저지선이자 마지노선인 100% 턱걸이 수준까지 추락했다. 향후 닥쳐올 대규모 신용 위험에 대비하기보다 당장의 회계상 순이익을 지키려다 대응 여력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IBK기업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 등 주요 4개 은행의 고정이하여신 잔액은 총 8조 8,08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보다 약 9,000억 원(11.4%) 늘어난 규모이며, 2024년 9월 말과 비교하면 불과 2년 새 30.5%나 급증했다. 경기 둔화와 고금리 여파로 한계 기업과 차주가 속출하면서 은행 자산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가장 큰 문제는 부실 규모가 팽창하는 사이 손실흡수력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 대비 대손충당금 적립률(NPL 커버리지 비율)이 일제히 급락했다는 점이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100%라는 것은 부실채권 100원당 충당금이 정확히 100원 쌓여 있다는 의미다. 부실이 조금만 더 늘거나 추가 적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충당금 잔액이 부실채권 규모에도 못 미치는 위험 구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런 완충력 약화는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은 IBK기업은행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IBK기업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은 9월 말 기준 4조 5,082억 원으로 네 곳 가운데 가장 컸다. 부실채권이 전년 동기 대비 늘어나는 동안 충당금 잔액은 오히려 약 5.1% 줄었다. 그 결과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1년 만에 106.02%에서 100.04%로 5.98%포인트 떨어지며 겨우 세 자릿수를 유지했다. 2024년 9월 말 116.86%였던 것과 비교하면 2년 사이에 손실 흡수 버퍼가 빠른 속도로 소진됐다. 연체율 역시 9월 말 1.04%로 치솟으며 자산 전반의 위험 수위가 높아졌다.
다른 주요 은행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우리은행은 지난해 9월 말 180.91%에 달했던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9월 말 126.70%로 1년 만에 54.21%포인트 급락했다. 2024년 9월 말 270.24%에 이르렀던 완충력이 2년 만에 반토막 났다. 부실채권이 29.8% 늘어나는 사이 충당금 잔액을 되레 9.1% 줄인 결과다. 하나은행 역시 충당금을 11.2% 늘렸지만 부실채권이 41.9% 폭증하면서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1년 새 29.43%포인트 급락한 106.52%에 머물렀다. 2년 전 181.67%였던 하나은행의 비율도 100% 선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반면 신한은행의 지표 개선 현상에는 착시 효과가 섞여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한은행의 9월 말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29%로 전년 동기(0.30%) 대비 0.01%포인트 낮아졌고, 연체율 역시 0.31%에서 0.29%로 소폭 내렸다. 그러나 이는 분모인 총여신이 4.7% 증가하면서 나타난 비율 방어 효과가 크다. 실제 신한은행의 부실채권은 2.8% 늘어난 반면 충당금은 1.6% 증가하는 데 그쳐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164.38%에서 162.51%로 하락했다. 자산 규모를 늘려 비율을 방어하는 방식은 차주들의 상환 능력이 꺾일 때 부실의 충격을 더 키울 위험이 있다.
이번 건전성 지표 악화의 직접적인 진원지는 기업 대출이다. 가계대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은행들이 기업금융 영업으로 외형을 확장해 왔으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이 대출들이 대거 부실로 돌아왔다. 하나은행의 경우 9월 말 기업여신 고정이하여신이 1조 4,918억 원으로 전년 동기(9,031억 원) 대비 65.2% 폭증했다. 우리은행 역시 기업 부문 고정이하여신이 7,520억 원에서 9,707억 원으로 29.1% 증가했으며, 전체 부실채권 증가액의 71.6%가 기업 대출에서 비롯됐다.
은행권이 부실 급증세에도 충당금 적립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배경에는 단기 실적 관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손충당금은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되므로, 충당금을 늘리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즉각 감소한다. 단기 실적 방어와 주주 환원 여력을 유지하기 위해 손실 완충망 확충을 뒤로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심각한 대목은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잠재 부실 규모다. 통상 1~3개월 연체됐거나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 부실 직전 단계로 분류되는 요주의여신 잔액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4개 은행의 요주의여신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12조 1,461억 원에서 9월 말 12조 6,293억 원으로 4,832억 원(4.0%) 증가했다. 잠재 부실이 이미 부실화된 고정이하여신 잔액(8조 8,080억 원)의 1.4배를 웃도는 상태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계 기업의 도산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2조 원이 넘는 요주의여신이 부실로 전환되거나 담보 가치 하락으로 회수율이 떨어질 경우, 은행들은 한꺼번에 막대한 규모의 추가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이 경우 미래 수익성 악화와 자본 건전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향후 잠재 부실 대출의 고정이하여신 강등 속도와 이에 대응하는 은행들의 충당금 추가 전입 규모가 시스템 건전성을 가늠할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