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6.10.11 08:41
내년 3,400억 유로 국채 발행 앞두고 이자 비용 폭증
소수 정부 한계로 430억 유로 긴축 예산안 통과 불투명
재정적자 통제 여부와 연말 예산안 합의가 핵심 가늠자

국가 신용과 직결된 프랑스 국채 시장의 경고음이 단순한 시장 금리 상승을 넘어 재정 통제력 상실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가리키고 있다. 지난 1일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5%선에 바짝 다가서며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채권 매도세 속에서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5.34%를 찍는 등 주요국 금리가 동반 상승했으나, 정작 시장이 가장 위험한 징후로 포착한 곳은 프랑스였다. 채무 불이행 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에서 프랑스는 80bp를 기록하며 미국의 37bp와 일본의 26bp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유로존 2위 경제 대국이 안정적인 채권국에서 재정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고위험 차입 주체로 재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이번 프랑스 국채 불안의 본질은 저금리 시대에 무분별하게 쌓아 올린 천문학적 부채가 고금리 환경과 맞물려 이자 상환 부담으로 되돌아온 데 있다. 과거 제로 금리 시절에는 부채 총액이 불어나도 이자 지출이 적어 위기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만기가 도래한 채권을 5% 안팎의 높은 금리로 재발행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재정 구조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프랑스 재무부에 따르면 2027년에 계획된 국채 발행 규모는 약 3,400억 유로(약 516조 원)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올해 약 600억 유로 수준인 프랑스 정부의 연간 이자 비용은 2027년 900억 유로 안팎까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자 상환액 하나만으로 국방과 교육 예산 전체를 뛰어넘는 기형적인 구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더 심각한 대목은 파국으로 치닫는 재정 건전성을 바로잡을 정치적 통제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됐다는 점이다. 프랑스 세바스티엥 르코르뉘 총리는 지출을 강도 높게 억제하지 못할 경우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2025년 GDP 대비 5.1%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5.4%로 확대될 것으로 보여, 유럽연합(EU)이 규정한 재정준칙 상한선인 3%를 아득히 넘어섰다.
정부는 이를 막겠다며 연금 인상 억제, 의료비 삭감, 각종 세제 혜택 축소 등을 통해 430억 유로를 줄이겠다는 2027년도 예산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소수 정부라는 한계가 긴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국을 장악한 좌파 연합과 극우 성향 국민연합(RN) 등 야당은 긴축안에 협조하기는커녕 감세와 복지 확대를 내건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부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좌파 진영은 마크롱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연금 개혁 폐지와 최저임금 인상, 심지어 국채 소각까지 주장하고 있으며, 국민연합 역시 광범위한 세금 감면을 내걸며 맞불을 놓고 있다. 9월 29일 프랑스 릴과 지난 7일 파리 등지에서는 교육 재정 삭감과 긴축 예산에 반발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가 벌어지며 사회적 분열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2027년 봄으로 예정된 대선 국면과 맞물려 표심을 잃게 될 지출 삭감이나 증세 같은 고통 분담을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재정적 교착 상태는 유로존 내 국채 시장의 자금 이동으로 직결되고 있다. 불안감을 느낀 시장 투자자들이 프랑스 자산을 팔고 안전 자산인 독일 국채로 눈을 돌리면서, 두 국가의 10년물 국채 금리 격차는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3'로 묶어두면서도 부정적 전망을 거두지 않는 이유 역시 분열된 의회가 예산 통과와 재정 정상화를 끝내 무산시킬 것이라는 비관적 시각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프랑스 국채 금리가 지나치게 치솟거나 차환 발행이 차질을 빚을 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이 과거처럼 국채 매입에 나설 것이란 기대 섞인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긴축과 개혁을 이행하지 않는 개별 회원국의 방만한 재정을 유동성으로 무조건 방어해 주는 데에는 독일 등 다른 회원국들의 거센 반발과 정치적 한계가 뒤따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결국 정치권의 표 계산에 밀려 재정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 대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채 이자와 국가 신용도 강등 위협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연말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43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삭감에 합의해 재정 통제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가 향후 프랑스 국가 신용등급과 차환 성패를 결정할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